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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엿같은 사랑> 드라마는 느와르와 스릴러가 들어간 드라마라길래 좀 무겁고 어두울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보니 로맨스 코미디 특유의 경쾌함도 제법 살아 있었습니다. 기억을 잃은 여자와 거짓말을 하는 남자라는 설정만 봐도 뻔해 보이는데, 뒤로 갈수록 생각보다 여러 층위로 읽히는 드라마였습니다. 특히 주인공 커플보다 두 친구의 관계가 더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느와르·스릴러·로맨스, 이 조합이 실제로 통하는가
드라마는 "사람의 인생에도 장르가 있다면 당신의 인생은 어떤 장르일까?"라는 나레이션으로 시작합니다. 첫 대사부터 장르 혼합(genre blending)을 의도하고 있다는 신호를 노골적으로 보내는 셈인데, 여기서 장르 혼합이란 서로 다른 장르의 문법을 한 작품 안에서 교차 배치하는 서사 기법을 말합니다. 한국 드라마에서 이 방식이 성공하려면 각 장르의 무게가 비슷하게 분배되어야 합니다. 어느 한쪽이 너무 무거워지면 나머지가 억지처럼 보이거든요.
제가 직접 봤을 때, 이 드라마는 그 균형을 나름대로 잡고 있었습니다. 느와르(noir) 계열의 조직 폭력, 비리 검사 수사라는 묵직한 뼈대 위에, 기억 상실이라는 익숙한 로맨스 코미디 장치를 얹었습니다. 여기서 느와르란 범죄와 도덕적 모호함을 중심으로 어두운 분위기를 그리는 장르를 말하는데, 주인공 장태하가 일본 조직에서 파칭코 관리를 하던 인물이라는 설정이 이 느와르적 색채를 뒷받침합니다.
일반적으로 장르가 많이 섞일수록 작품이 산만해진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 드라마는 스릴러 파트가 로맨스의 긴장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면서 생각보다 유기적으로 연결됩니다. 단, 아역 배우와 성인 배우 간의 비주얼 매칭이 너무 안 됐습니다. 특히 정해인의 아역은 정해인보다 키가 더 커 보이는 느낌이었고, 과거 회상 장면이 나올 때마다 아역 배우들을 보며 몰입이 툭툭 끊겼습니다. 이건 제가 특히 예민하게 느낀 부분이기도 합니다.
- 느와르: 조직 폭력, 검찰 비리 수사, 권력자와의 대결 구도
- 스릴러: 기억 상실한 검사를 숨기는 긴장감, 증거 확보 과정
- 로맨스 코미디: 첫사랑 재회, 동거, 거짓 남자친구 설정의 경쾌함
주인공보다 더 오래 남는 두 여자의 우정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장태하와 고은새의 로맨스에 집중할 텐데, 저는 오히려 고은새와 효진의 우정 서사가 이 드라마에서 가장 현실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억을 잃은 은새가 서울에서 효진을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효진은 그동안 은새에게 얼마나 상처받았는지를 담담하게 털어놓습니다. 검사로 성공한 후 은새가 무의식중에 효진을 깎아내리는 말을 했던 거죠.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출퇴근을 반복하던 시기에 예민함이 극도로 올라갔고, 그 예민함이 가장 가까운 지인에게로 향했습니다. 관계가 끊기지는 않았지만, 예전 같은 편안함으로 돌아가지는 못했습니다. 한 번 금이 간 신뢰는 생각보다 훨씬 천천히 회복되거든요.
심리학에서는 이를 정서적 상처의 지속성(emotional scar persistence)이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해, 감정적 충격이 남긴 흔적은 사건 자체가 해결된 후에도 오랫동안 관계 안에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은새와 효진이 결국 화해할 수 있었던 건 드라마적 설정도 있겠지만, 두 사람 사이에 그 이전부터 쌓인 깊은 우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효진이 용서를 선택했다는 것, 그게 핵심이었습니다.
이 장면을 보고 나서 제 안에 있는 여유를 점검하게 됐습니다. 사람은 체력이든 정신이든 여유가 없을 때 실수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관계를 지키려면 결국 나 자신을 먼저 관리해야 한다는 걸, 드라마 한 장면이 다시 상기시켜 줬습니다. 관계를 다룬 학술 연구에서도 이 점은 반복적으로 확인됩니다. 출처: 미국심리학회(APA)에 따르면, 만성적 스트레스 상태에서는 공감 능력이 저하되고 가까운 관계에서 부정적 언어 사용이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사진이라는 장치가 이 드라마에서 하는 일
이 작품에서 사진은 단순한 소품이 아닙니다. 서사적 장치(narrative device)로 기능합니다. 서사적 장치란 이야기의 흐름을 바꾸거나 인물의 운명에 직접 개입하는 도구를 말하는데, 이 드라마에서는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이 기억을 잃은 은새에게 태하의 거짓말이 맞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태하에게 그 사진은 첫사랑의 증거이자, 은새를 보호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SNS 속 사진이 은새에게 자신의 진짜 이름과 정체를 찾는 실마리를 주었고, 할머니 집 오래된 앨범 속 사진 한 장이 백상길이라는 인물을 완전히 무너뜨립니다. 사진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는 사진의 지표성(indexicality)과 맞닿아 있습니다. 지표성이란 사진이 실제로 존재했던 순간을 물리적으로 기록한다는 특성으로, 수전 손택이 《사진에 관하여》에서 강조한 개념입니다. 출처: Britannica, Susan Sontag에 따르면, 손택은 사진이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현실의 흔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 저도 이제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순간을 사진으로 더 많이 남겨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잊힌 진실을 꺼내는 것도, 기억을 지키는 것도 결국 누군가와 함께 찍힌 그 한 장에서 시작되는 일이니까요.
Q&A
Q. 이런 엿같은 사랑, 스릴러가 강한 편인가요 로맨스가 강한 편인가요?
A. 일반적으로 제목만 보면 로맨스 코미디로 분류하기 쉬운데, 제가 직접 봤을 때는 스릴러와 느와르의 비중이 생각보다 꽤 높습니다. 초반부는 기억 상실 로맨스 분위기이지만, 중후반부터는 검찰 비리 수사와 조직 폭력 대결이 주를 이룹니다. 가볍게 보려다 예상보다 무거운 장면에 당황할 수 있습니다.
Q. 장태하가 처음부터 거짓말을 하는 이유가 뭔가요?
A. 기억을 잃은 고검사를 병원에 무연고 상태로 두면 백상길 조직에 다시 노출될 위험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태하는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남자친구로 속이는 위험한 거짓말을 선택한 것이고, 거기엔 첫사랑에 대한 오래된 빚을 갚으려는 마음도 깔려 있습니다.
Q. 하영 배우 논란 때문에 드라마 보기 불편하지 않나요?
A. 작품 자체는 마음에 드는데, 드라마 관련 숏츠 댓글마다 친일 후손 논란이 따라다니다 보니 계속 애정을 갖기는 쉽지 않습니다. 작품과 배우를 분리해서 보는 것이 일반적인 접근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우엔 논란이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몰입감이 실제로 낮아졌습니다. 그래도 배우 정해인 덕분에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흐뭇하게 보게 되는 드라마입니다.
결론
이런 엿같은 사랑은 뻔한 로맨스 코미디에서 시작해 느와르와 스릴러로 확장되는 구조가 생각보다 잘 맞물린 드라마입니다. 아역 배우 캐스팅 미스매칭과 주연 배우인 하영의 외부 논란이 몰입을 방해한다는 점은 아쉽지만, 장르 혼합 자체의 시도는 유효했습니다.
저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주인공 커플보다 두 여자 친구의 관계에서 더 많은 걸 느꼈습니다. 여유 없이 살다 보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실수하게 된다는 것, 그리고 그 실수는 생각보다 오래 관계 안에 남는다는 것. 그 장면 하나가 제가 저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사진에 대한 생각도 조금 바뀌었습니다. 사람과 함께하는 순간을 기록해두지 않으면 어느 날 아무것도 꺼낼 수 없을 수 있다는 걸, 이 드라마가 꽤 효과적으로 보여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