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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모자무싸 드라마 리뷰 (캐릭터 서사, 연기력, 존재의 가치)

리치체리 2026. 7. 2. 18:10

목차


    드라마를 보면서 재생바를 확인한 적 있으신가요? 얼마 안 남았다는 사실이 반가운 게 아니라 아쉬워서요. 넷플릭스〈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이하 모자무싸)가 딱 그랬습니다. 12부작으로 완결이 났는데, 마지막 화를 보는 내내 재생바가 줄어드는 게 아깝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처음에 황동만이라는 주인공이 솔직히 아주 불편했습니다. 그런데 보다 보니 그 불편함이 사실은 본인의 존재 가치를 나타내기 위해서 였더라고요.



    캐릭터의 자기 서사 

    처음 몇 화를 보면서 황동만 캐릭터가 눈살을 찌푸리게 했습니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오히려 피해를 끼치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그런데 그 행동의 근원을 들여다보니 전혀 다른 그림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황동만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발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걸 드라마에서는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의 왜곡된 표현 방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자기효능감이란 스스로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뜻하는데, 황동만은 그 믿음이 흔들릴 때마다 더 크게 떠들고 더 많이 발산하는 방식으로 버텼던 겁니다. 20년 동안 데뷔 한 번 못한 감독 지망생이 그 길을 포기하지 않은 것, 솔직히 처음엔 이해가 안 됐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박수가 나왔습니다.

    저도 조금 높은 현실의 벽 앞에서 무기력해진 적이 있습니다. 한두 번 막히면 다른 길을 찾거나 조용히 포기하는 쪽을 택했거든요. 그런데 황동만은 주변의 비난과 포기하라는 압박 속에서도 자기 분야를 놓지 않았습니다. 끝내 본인의 목적을 달성해내는 모습에서는 존경스럽다는 감정까지 들었습니다. 우리는 성공한 감독의 이름은 알아도 아직 데뷔 못 한 감독의 이름은 모르잖아요. 그 무명의 시간을 버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 드라마가 다루는 핵심 개념 중 하나가 바로 자기서사(Narrative Identity)입니다. 자기서사란 자신의 삶을 어떤 이야기로 의미화하느냐를 뜻하는 개념으로, 심리학에서는 정체성 형성의 핵심 요소로 봅니다(출처: 미국심리학회(APA)). 황동만이 "웃기게 살자"는 모토를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자기서사를 새로 쓰는 과정이었습니다. 단순한 성공 여부가 아니라, 어떤 태도로 살아갈 것이냐를 찾는 이야기였던 거죠.

    변은아는 정반대였습니다. 황동만이 밖으로 발산하는 방식이라면, 변은아는 침묵으로 수축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둘 다 결국 같은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자신을 증명하는 방식이 달랐을 뿐, 출발점은 같았던 거예요. 그 둘이 서로에게 끌리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저는 그 지점이 이 드라마에서 가장 잘 쓰인 감정선이라고 생각합니다.

    • 황동만: 발산형 — 떠들고 웃기면서 무가치함을 덮으려 함
    • 변은아: 수축형 — 침묵과 회피로 무가치함을 숨기려 함
    • 박경세: 성취 집착형 — 목표 달성으로만 가치를 확인하려 함
    • 황지만: 의미 상실형 — 삶의 목적 자체를 놓아버린 상태
    요약: 황동만의 '발악'처럼 보이던 행동은 사실 자기효능감이 흔들릴 때 나오는 발산 방식이었고, 그 모습에서 결국 제 이야기가 보였습니다.

     

    연기력 - 연기력이 대본을 만났을 때 일어나는 일

    드라마를 보다 보면 연기가 서사를 살리는 경우도 있고, 대본이 연기를 빛나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작품은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데, 구교환 배우의 표정 하나가 대사 열 줄보다 많은 말을 하는 장면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특히 변은아와 오정희가 삼자대면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황동만이 처음엔 상황을 파악 못 하다가 서서히 둘의 관계를 눈치채는 그 표정 변화, 솔직히 이 정도일 줄은 예상 못 했습니다. 고윤정 배우도 이 드라마로 완전히 다시 봤습니다. 변은아라는 캐릭터가 그렇게 찰떡으로 맞을 줄 몰랐어요.

    여기서 드라마 비평에서 자주 쓰이는 개념인 캐릭터 일관성(Character Consistency)을 짚을 필요가 있습니다. 캐릭터 일관성이란 인물이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내면 논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단 한 명의 조연도 이 일관성이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오정희가 딸 변은아에게 냉정하게 보이면서도 결국 맞는 말만 하는 이유, 최동현 대표가 마지막까지 돈 중심으로 움직이는 이유, 전부 각자의 내면 논리가 있었습니다. 사람을 판단할 때 그 사람의 사정을 모르고서는 온전히 알 수 없다는 것, 이 드라마가 인물마다 배경을 꼼꼼하게 깔아둔 덕분에 자연스럽게 느끼게 됩니다.

    박혜영 작가의 대사는 정말 짜증스러울 정도로 잘 씁니다. 긍정적인 의미로요. 오정희가 변은아에게 "나한테 다 쏟아내고 치고 올라가라"고 하는 장면, 엄마로서는 매정하게 보이지만 그 안에 애정이 다 들어 있습니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조언하는 방식이, 어쩌면 그게 진짜 어른의 언어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감정 조절 능력(Emotional Regulation)이 낮은 인물일수록 이 드라마 안에서 더 많이 흔들리고, 반대로 감정을 정리한 인물일수록 관계가 안정됩니다. 감정 조절 능력이란 자신의 감정 상태를 인식하고 상황에 맞게 조절하는 심리적 능력을 뜻합니다(출처: 미국국립보건원(NIH) 심리학 데이터베이스).

    황지만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저는 중반까지 그를 완전히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인물로 읽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영실이의 존재를 알고 나서 시를 쓰기 시작하는 장면, 그게 의미심장했습니다. 이전까지 시는 나레이션으로만 흘렀는데, 마지막 장면에서는 직접 앉아서 씁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려는 이유가 생겼다는 거잖아요. 말 없이도 그걸 보여준 연출이 인상 깊었습니다.

    요약: 대본의 캐릭터 일관성과 배우들의 연기력이 맞물리면서, 어느 장면 하나 허투루 지나가는 것이 없는 드라마가 완성됐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모자무싸 처음에 황동만 캐릭터가 너무 불편한데 계속 봐야 할까요?

    A. 저도 처음 몇 화는 많이 불편했습니다. 그런데 그 불편함이 사실 이 드라마의 장치입니다. 황동만의 행동이 낯설게 느껴질수록 나중에 그 이유를 알게 됐을 때 감정이 훨씬 크게 옵니다. 중반부를 넘기면 완전히 다른 눈으로 보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Q. 12부작이면 너무 짧은 거 아닌가요? 이야기가 다 풀리나요?

    A. 솔직히 16부작이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그런데 풀려야 할 이야기들이 12화 안에 다 정리됩니다. 조금 빠르게 마무리되는 느낌은 있지만, 떡밥이 회수되지 않고 끝나는 불쾌함은 없습니다. 깔끔하게 마무리됩니다.

     

    Q. 박혜영 작가의 다른 작품도 봐야 모자무싸가 더 잘 이해될까요?

    A.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모자무싸 단독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나의 아저씨〉를 먼저 보셨다면 작가 특유의 대사 스타일과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공통점이 느껴져 더 풍부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Q. 황동만과 변은아가 결국 사랑으로 이어지나요?

    A. 네, 이어집니다. 다만 이 드라마에서 사랑은 설레는 감정보다 서로의 결핍을 알아보는 방식으로 그려집니다. 황동만이 변은아가 우울할 때 달려와 웃게 해주는 장면이 그 관계를 가장 잘 보여줍니다. 화려한 고백보다 그 장면이 훨씬 더 사랑처럼 느껴졌습니다.

     

    결론 - 존재의 가치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 한동안 멍했습니다. 단순히 재밌어서가 아니라, 제가 오랫동안 외면해왔던 질문 하나가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목적인가, 아니면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으로 존재하느냐가 목적인가.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지만 그 속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존재만으로도 가치 있다는 점이지 않나 생각됩니다.

    황동만의 "웃기게 살자"는 말이 처음엔 가볍게 들렸는데, 드라마가 끝나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니 사실 꽤 단단한 말이었습니다. 매 순간 어떤 방향성으로 살아갈 것인지, 그 태도들이 모여서 결국 나라는 사람을 만든다는 것. 저도 현실을 조금 더 유쾌하게, 좀 더 밝게 받아들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보려 합니다. 각자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는 모든 분들께 한 번쯤 권하고 싶은 드라마였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MBHvbOVZQZ8